창녕 광산서당
昌寧 光山書堂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9호
창녕 광산서당은 양훤(楊晅)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서당이다. 서당은 마을 단위로 설립한 초등 단계의 사설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다.
양훤은 조선시대 학자로 병자호란 때 창녕 일대에 의병을 일으켜 싸웠으나, 인조가 청에게 항복한 후에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창녕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원래 이곳에는 정조 19년(1795) 양훤을 기리는 광산서원이 세워졌으나 고종 5년(1868)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이후 후손들이 양훤을 기리기 위해 옛 서원터에 서당을 건립하였다. 광산서당은 문중의 문집(文集)* 을 보관하는 서고(書庫)를 갖추고 있으며 청주 양씨 후손들이 후학을 가르치는 장소로도 활용되었다.
*문집(文集) : 시나 문장을 모아 엮은 책
국가유산 설명
병자호란(1636) 때 활약한 양훤의 애국심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서당이다.
양훤은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 군사를 무찌르기 위해 창녕 일대의 의병을 모아 싸웠다.
광산서당은 기록에 따르면 1935년에 세운 것으로 전한다. 이곳은 후학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책을 보관하는 서고(書庫)까지 갖추고 있다.
창녕 광산서당
昌寧 光山書堂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9호
창녕 광산서당은 양훤(楊晅)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서당이다. 서당은 마을 단위로 설립한 초등 단계의 사설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다.
양훤은 조선시대 학자로 병자호란 때 창녕 일대에 의병을 일으켜 싸웠으나, 인조가 청에게 항복한 후에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창녕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원래 이곳에는 정조 19년(1795) 양훤을 기리는 광산서원이 세워졌으나 고종 5년(1868)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이후 후손들이 양훤을 기리기 위해 옛 서원터에 서당을 건립하였다. 광산서당은 문중의 문집(文集)* 을 보관하는 서고(書庫)를 갖추고 있으며 청주 양씨 후손들이 후학을 가르치는 장소로도 활용되었다.
*문집(文集) : 시나 문장을 모아 엮은 책
국가유산 설명
병자호란(1636) 때 활약한 양훤의 애국심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서당이다.
양훤은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 군사를 무찌르기 위해 창녕 일대의 의병을 모아 싸웠다.
광산서당은 기록에 따르면 1935년에 세운 것으로 전한다. 이곳은 후학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책을 보관하는 서고(書庫)까지 갖추고 있다.